김하성을 제친 야탑고 최대어 박효준의 화려했던 고교 시절
성남 야탑고에서 내야수로 뛰던 유망주가 있었는데 이 선수는 1년 선배 김하성을 제치고 주전 유격수를 꿰찰 정도로 더 높은 평가를 받은 고교 최대어 내야수였음.
이 선수 때문에 김하성은 유격수 자리를 내주고 2루수로 포지션 변경을 하였고 이 선수는 3년 동안 타율 3할 5푼 5리, 출루율 5할을 기록하였음.
김하성은 야탑고 졸업 후 키움에 의해 2014년 2라운드 (전체 29번째)에 지명되었고 2020년까지 키움의 내야를 책임진 후 MLB 샌디에이고로 진출했음.
고교 시절 김하성을 능가했던 선수는 박효준(Hoy Park)이었는데 이 선수는 야탑고 졸업 후 MLB 최고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와 116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고 MLB 무대에 도전하게 됨.
오늘은 어찌 보면 비운의 아이콘이 된 박효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함.
뉴욕 양키스 유망주 박효준이 마주한 마이너리그의 냉혹한 현실
2015년 양키스 루키리그 팀인 플라스키 양키스(Pulaski Yankees)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박효준은 56게임에서 타율 2할 3푼 9리를 기록했고 2016년에는 A리그 팀인 찰스턴 리버독스(Charleston RiverDogs)에서 타율 2할 2푼 5리를 기록함.
이후에도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박효준은 2019년 AA 리그 팀인 트랜튼 썬더(Trenton Thunder)에서 타율 2할 7푼 2리 타점 41개를 기록했음.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시즌이 통째로 날아갔고 2021년에는 AAA 리그까지 올라갔는데 MLB 양키스의 선수 중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자 처음으로 MLB 클럽으로 승격되게 됨.
하지만 핀치 히터로 단 1타석을 뛴 후 (내야 땅볼로 아웃됨) 다시 AAA 리그 팀으로 내려가게 됨.
이후 양키스는 박효준을 피츠버그 파이리츠(Pittsburgh Pirates)로 트레이드했고 AAA 리그에서 뛴 후 MLB로 승격되었는데 8월 1일 첫 안타를 쳤고 8월 10일에는 첫 홈런을 쳤음.
하지만 이후 극심한 슬럼프를 겪은 후 다시 AAA 리그 팀으로 내려가게 됨.
이때 피츠버그에서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한 게 정말 아쉽게 됨. 이후 애틀랜타, 오클랜드를 전전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고 새로운 팀을 찾지도 못했음.
박효준 사례로 본 KBO 유망주들의 MLB 직행 실패 원인 분석
박효준은 양키스와 계약하기 전까지 SK 구단과 협상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짐.
당시 SK는 계약금 7억 원, 1군에서의 플레잉 타임 보장, 입단 후 7년 차에 MLB 도전을 위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으나 박효준은 빅리그의 희망을 안고 양키스와 계약을 함.
하지만 고교를 갓 졸업한 박효준이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뛴다는 게 정확하게 뭔지 알았을까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음.
박효준은 양키스와 계약 후 미국 진출 후 3~4년 안에 MLB 무대에서 뛰겠다고 포부를 밝혔지만 이는 한국 고교 무대에서 뛰던 선수의 허황된 꿈이 아니었나 싶음.
첫해 뛰었던 루키리그 팀 플라스키 양키스는 인구가 10,000명도 안 되는 촌동네에 위치했고 선수단에 대한 구단의 지원은 KBO 2군보다 열악했음.
고교를 갓 졸업한 박효준의 몸이 원정 경기가 포함된 시즌 50~60경기를 버티는 것도 쉽지 않았고 성적도 기대 이하이었음.
박효준의 성적은 3년 차부터 약간 오르기 시작했지만 선수층이 두꺼운 양키스는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음. 애시당초 MLB에 진출할 계획이었다면 양키스가 아닌 소규모 시장 팀으로 갔거나 아님 KBO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게 올바른 선택이었을 거로 보임.
장현석과 심준석이 기억해야 할 박효준의 교훈과 제도적 과제
최근 몇 년간 한국 고교 무대에서 MLB 클럽과 계약한 선수로는 장현석, 심준석, 배지환이 있는데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음.
MLB 마이너리그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고 있음.
MLB 구단의 경우 매년 국제 유망주 계약에 많게는 100억 원 정도를 쓰지만 대부분의 선수는 MLB까지 도달하지 못함.
향후 MLB에 진출하고자 하는 유망주는 KBO에서 뛰면서 해외 진출 자격을 얻은 후 마이너리그 강등이 없는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는 게 올바른 선택이 아닐까 생각됨.
이 코스는 거의 모든 일본 NPB 선수가 택하는 방법이기도 함. KBO는 해외 구단과 계약했던 선수가 한국으로 돌아올 경우 KBO 리그에서 뛰지 못하게 2년의 유예 기간을 거치게 만드는 족쇄 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봄.
해외 진출 도전을 했다고 선수 생활을 망치게 하는 페널티 조항은 시대에 맞지 않는 조항이라고 봄.
호기롭게 MLB 도전을 했던 박효준은 이제 연고 팀도 없고 한국 병역 문제도 해결 못한 29세의 노장 선수가 되었음.
최근 박효준이 미국에서 결혼을 했다, 야구 교실을 운영한다는 소식이 있지만 정확한 소식인지는 알 수 없음.
박효준의 도전은 본인 스스로 결정한 거고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고교에서 미국 진출을 고민한다면 미국 마이너리그는 생각보다 수준이 높고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며 선수단 지원은 창렬하다는 걸 고려한 후 결정해야 한다는 선례를 남겼다고 봄. By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