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검사의 굴욕적인 몰락. 오밤중 통화는 ‘관행’인가, 아니면 명백한 ‘계엄 실행’의 증거인가?
변호사 수입보다 오욕을 택한 박성재 – 그의 씁쓸한 최후
인생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평범한 사람이나, 저명인사나 마찬가지다. 그냥 변호사로 일했으면 최소한 70살까지,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일했을 텐데 많이 아쉽다. 괜히 윤석열로 인해 법무부 장관 한 번 했다가 인생 완전히 망쳐 버렸다. 조용히 변호사 노릇 했으면 수입도 짭짤했을 거다. 괜히 한동훈 후임으로 법무부 장관 한 번 하다가 인생 조져 버렸다.

박성재는 윤석열보다 세 살 어리지만, ‘돌대가리’ 윤석열이 사법시험을 9수하는 바람에 사법시험은 박성재가 6년 빨랐다. 그러니 검사 시절에는 늘상 박성재가 상사였을 것이다. 검사 후배 윤석열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니 가문의 영광으로 받아들였겠지만, 최후는 씻을 수 없는 오욕이 되어 버렸다. 박성재가 윤석열의 계엄을 막지는 못했어도, 적극 반대하고 계엄 후속 조치 없이 즉시 사임했더라면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성재 – 밤 10시 57분, ‘전화질’이 폭로한 법무부의 계엄 집행 임무
어떤 자리보다 양심과 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법무부 장관이 불법적 계엄령 선포에 동조했다. 나아가 검찰 조직 등을 활용해 적극적인 후속 조치들을 시행하려 했던 정황까지 포착됐다. 그러니 구속되는 건 당연하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윤석열의 계엄에 대한 불법 행위들을 온몸으로 막았어야 할 법무부 장관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 사전에 몰랐다고 한다. 계엄 사후 조치 시도도 한 적 없다고 발뼘이다.
2024년 12월 3일 계엄 당일 저녁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조기 호출됐던 박 전 장관은 법무부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밤 10시 57분께 임세진 전 법무부 검찰과장과 통화했다. 이어 배상업 전 법무부 출입국본부장, 신용해 전 법무부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과 연이어 통화했다. 박 전 장관과 통화를 마치고 임 전 과장은 검찰 인사와 조직 등을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국 검사 및 서기관과 통화했고,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하는 등 순차 연락이 이루어졌다. 이 같은 연락 과정에서 박 전 장관 지시 아래 계엄 후속 조치검토가 이뤄졌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특검의 판단은 너무나 상식적이다. 법에 무지한 사람이 봐도 박성재의 전화질은 계엄 후속 조치를 지시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오밤중에 법무부 장관이 그 사람들에게 전화할 이유가 뭔가? 뻔하다. 그런데 박성재는 부인한다.
박성재 – 뉴스 안 본다는 무책임, 공직자 윤리의 파괴
2025년 4월 14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 이후 법무부 장관으로서 사과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슨 사과를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제가 판단할 일은 아니다. 뉴스 안 본다.” 법과 국민 앞에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공직자의 말이 이따위다. 윤석열의 불법 계엄을 막기는커녕 반대도 하지 않고 계엄 후속 조치를 진행했던 사람이 하는 말이다.
국무위원 전원의 ‘자기 변명’, 사법부 해체론에 불을 붙이다
하기야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어떤 한 놈도 계엄 선포에 명확한 반대 의사를 내거나 저지하지 않았으니 박성재만 탓할 일도 아니다. 윤석열의 개차반 행동을 막지 못해 죄송하다고 국민에게 사과한 국무위원도 한 놈 없다. 모든 사람이 그저 자기 변명뿐이다. 국무회의 전까지 계엄을 사전에 몰랐다고 한다. 국무회의에서 반대 의견을 냈다고 주장하는 인간도 있다. 계엄 후속 조치는 안 했다고 주장한다. 사전에 몰랐다고 말하면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다. 그런 놈들이 이 나라의 장관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