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도 권한도 없는 허울뿐인 지방자치 35년, 왜 이 지경이 됐나
대한민국의 지방자치제도는 현대사의 굴곡과 궤를 같이해 왔다.
군사정권 시절 중단되었다가, 1991년 지방의회 선거를 시작으로 1995년에는 단체장까지 주민이 직접 선출하게 되면서 비로소 ‘지방자치’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형식만 놓고 보면 그럴듯하다. 하지만 다시 시작된 지 35년이 지난 지금,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성공작이 아니라 실패작에 가깝다.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돈 없는 지방자치, 이것이 자치인가
지방자치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은 재정이다. 하지만 한국의 지방자치는 출발부터 틀어져 있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7대3 수준. 지방정부는 스스로 살림을 꾸릴 수 없는 구조다. 주요 사업 예산은 중앙정부의 가이드라인과 승인 없이는 편성조차 어렵다. 독자적인 정책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도권이나 일부 광역시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 하지만 군 단위 지자체로 내려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건비조차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이런 조건에서 무슨 자치가 가능하겠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다. 지방 행정조직 자체의 존속 여부가 위태로운 지역도 적지 않다. 지자체 통합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통합한다고 재정자립도가 자동으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재정 없는 지방자치는 허울일 뿐이다.
감시 기능 상실한 지방자치 의회, 견제는 어디에 있나
지방자치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지방의회는 사실상 무력하다. 정책을 검증하고 예산을 심의할 전문성도, 의지도 부족하다. 그 결과 단체장의 독주를 막지 못하는 사례는 이미 일상이 되었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유일하게 단합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해외연수라는 이름의 단체 여행을 갈 때다.
여론의 뭇매를 맞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입으로는 연수라 우기지만, 국민 세금으로 떠나는 관광이라는 걸 모르는 국민은 없다. 그럼에도 죄책감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런 지방의회에 지방자치를 맡겨도 되는가.
지방자치 35년을 좀먹은 정당공천, 모든 비리의 뿌리
한국 지방자치의 가장 치명적인 폐해는 정당공천 제도다.
기초의원까지 중앙당 공천을 받는 구조에서 지방정치는 애초에 독립할 수 없다. 지역 주민이 아닌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의 눈치를 보게 된다. 지방의원은 지역의 대표가 아니라 중앙정치의 하청업자로 전락한다.
공천을 둘러싼 부패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민주당 전 시의원 김경이 강선우에게 건넸다는 1억 원 공천 뇌물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국민의힘 출신 홍준표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기초의원 5천만 원, 광역의원 1억, 국회의원 15억.”
과장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정치권을 전면 조사하면 공천 헌금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김병기 사건이 보여준 지방자치 35년의 참담한 민낯
최근 불거진 김병기 사건은 이 모든 구조적 병폐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배우자가 서울 동작구의회 부의장의 법인카드를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다.
지방의회 부의장에게 법인카드가 필요한 상황부터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것을 지역구 국회의원 배우자가 사용했다니, 이쯤 되면 지방의회는 독립기관이 아니라 사조직에 가깝다.
자식 일에 지방의회 의원들이 동원됐다는 정황까지 더해지며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지역구 국회의원의 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 이것이 과연 지방자치인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제도의 전면 개편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문제가 많다고 지방자치를 포기할 수는 더더욱 없다. 하지만 중앙당 공천과 지역구 국회의원과의 유착 문제만큼은 지금 당장 손대야 한다.
이 상태로 지방선거를 또 치른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실패한 지방자치를 또다시 연장하는 것뿐이다.
지방자치 35년.
이제는 미화가 아니라 반성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