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붙은 친박은 승리했고 원칙을 말한 비박은 추방됐다
박근혜는 탄핵당했다.
헌정 질서를 무너뜨렸고, 국정을 사유화했으며, 결국 범법 행위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됐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긴 전직 대통령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는 몰락했지만, 박근혜에 붙어 있던 친박 정치인들은 살아남았다.
반대로 박근혜를 비판하고 갈라섰던 비박 사람들은 정치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지금도 변방을 떠돌거나 사실상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은 상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보수 정치의 구조적 병폐다.
친박에서 친윤으로 변신은 무죄였던 친박 세력의 생존술
윤상현 – 권력의 냄새를 가장 빨리 맡는 친박 정치의 표상
윤상현은 박근혜를 누나라 불렀던 대표적 친박 인사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특보를 지냈고, 탄핵 국면에서는 앞장서 탄핵 반대를 외쳤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에는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으며 친윤의 핵심 실무 역할을 수행했다.
윤어게인, 탄핵 반대의 최전선에 섰던 인물이다.
요즘은 조용하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정치인은 늘 그렇다.
기회가 오면 가장 먼저 튀어나온다.

권영세 – 정권은 바뀌어도 자리를 지키는 불사조 친박
권영세는 검사 출신 정치인이다.
2002년 국회에 입성한 현역 의원이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주중대사를 역임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통일부 장관을 맡았고, 이후 당 비상대책위원장까지 올랐다.
성공하지 못했지만 작년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 권성동과 협착해 한덕수를 당 후보로 만들려는 공작을 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과 윤석열 정권, 두 실패한 권력의 핵심 구간을 모두 통과했지만 국정 실패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진 적은 없다.
권성동 등 윤핵관들과 함께 윤석열 체제를 떠받친 인물이다.
정진석 – 가장 가까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친박
정진석은 박근혜 시절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다.
탄핵 국면에서도 박근혜와 명확히 선을 긋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맡아, 윤석열이 국정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동안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다.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막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한 무능이 아니라 역사적 책임 회피다.
김기현 – 윤심으로 뜨고 윤심으로 버려진 친박
김기현은 박근혜 정부 시절 울산광역시장을 지낸 보수 진영의 핵심 지방 권력자였다.
윤석열 정권 들어 윤핵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국민의짐 당대표가 됐다.
그러나 당 운영은 실패했고,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쫓겨나다시피 물러났다.
그럼에도 끝까지 윤어게인을 외치며 친윤 노선을 유지했다.
김건희 관련된 명품백 논란까지 불거지며 도덕성에도 치명타를 입었다.
비박의 선택지: 변절 아니면 퇴장이라는 비박 정치인의 비극
원희룡 – 원칙을 버리고도 살아남지 못한 비박
원희룡은 한때 개혁 보수, 비박 성향 정치인의 대표주자였다.
박근혜 탄핵에도 찬성했다.
그러나 윤석열과 결합하며 국토교통부 장관을 맡았고,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법적 판단과 별개로, 정치적 신뢰는 이미 붕괴됐다.
원칙을 버렸지만 권력도 지키지 못한 사례다.
유승민·김무성 – 옳았지만 패배한 비박
유승민은 박근혜와 맞섰던 보수 개혁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보수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 속에 정치 변방으로 밀려났다.
김무성은 비박의 또 다른 축이었지만, 지금은 사실상 정치 은퇴 상태다.
비박 정치인들 대부분은 이렇게 사라졌다.
유일한 예외가 오세훈이지만, 그는 극히 드문 사례다.
친박을 청산하지 못했기에 윤석열이 있었다 – 반복되는 보수의 실패
언급되지 않은 친박은 많다. 비박도 많다. 그렇지만 한결같은 결론은,
친박은 많이 살아남았다.
비박은 거의 전멸했다.
이 현실이 말해주는 것은 명확하다.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정치 세력은, 반드시 더 나쁜 형태의 권력을 불러온다.
친박을 정리하지 못했기에 윤석열이 등장했고, 윤석열을 정리하지 못했기에 또 다른 윤석열은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정치는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된다.
그리고 한국 보수는 아직도 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