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실패를 가리기 위해 합리적 보수라는 위선의 언어를 쓰다
요즘 유력 보수 언론과 이른바 ‘원로 보수’라는 사람들이 유난히 자주 꺼내는 말이 있다.
바로 ‘합리적 보수’다.
듣기에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 말은 실체 없는 언어 유희, 더 정확히 말하면 국민을 기만하는 포장지에 불과하다.
보수면 보수지,
합리적 보수가 따로 있고 불합리 보수가 따로 있나.
개혁 보수, 꼴통 보수, 윤어게인 보수… 이런 구분이 실제 정치 선택에서 무슨 의미가 있었는가.
합리적 보수를 자처해도 보수 유권자의 선택은 늘 같았다
역사가 이미 증명했다.
보수 유권자는 결국 보수 후보를 찍는다.
합리적이든, 개혁적이든, 꼴통이든 선거 날 투표함 앞에서는 늘 하나로 수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선거에서 보수 후보는 한 명이기 때문이다.
설령 둘이 나오더라도, 더 큰 보수정당 후보를 고른다.
이게 현실이다. 이게 한국 정치의 냉혹한 구조다.
그런데도 일부는 지금도 “우리는 다르다”, “합리적 보수다”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윤석열과 절연하면 합리적 보수가 되는가
요즘 자칭 합리적 보수 인사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장동혁 일당에게 윤석열과 절연하라고 한다.
극우 윤어게인 세력과 선을 긋고,
극우 유튜버들과 인연을 끊고,
한동훈과 연대하라고 충고한다.
한심하다.
윤석열과 절연한다고 합리적 보수가 되는가.
극우 유튜버와 단절하면 갑자기 민주주의자가 되는가.
한동훈과 손잡으면 도덕성과 공공성이 자동으로 생기는가.
아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합리적 보수가 외면한 보수 대통령의 처참한 성적표
보수가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보수가 승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박정희 이후 보수 대통령 6명 중 임기 후 사법처리를 피한 사람은 김영삼 단 한 명이다.
- 전두환, 노태우: 징역형
- 이명박: 징역 17년
- 박근혜: 징역 22년
- 윤석열: 아직 판결 전이지만 결말은 보인다
특히 박근혜와 윤석열은 대한민국 역사상 유이한 탄핵 대통령이다.
이게 보수의 흑역사가 아니면 무엇인가.
문제는 단순히 ‘운이 나빴다’는 게 아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부정부패,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와 경멸이다.
합리적 보수?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무엇이 같았나
이명박은 성장 신화의 그림자 속에서
부패를 학습하고 실행한 인물이었다.
다스 비자금, 삼성 뇌물, 국정원 특활비.
부패가 체질이었다.
박근혜는 더 심각했다.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독재자의 딸로서 배운 통치 기술을
민주화된 사회에서도 그대로 사용했다.
그 결과가 국정농단이었다.
윤석열은 말할 것도 없다.
타협도, 조정도, 정치도 모르는 사람.
검찰 권력만 행사해 온 인물이
정치의 정점에 올라간 결과는 파국이었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합리적 보수라 칭하는 집단의 체질이다
이 문제를 대통령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면 안 된다.
보수 정치 전반에 깊이 박힌 유전자의 문제다.
이혜훈을 보라.
어린 인턴에게 퍼부은 폭언, 드러난 갑질.
그런데도 장관직을 포기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이런 사람을 다섯 번이나 공천을 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사과도 없었다.
그저 “우리 사람이 저쪽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에만 분노했다.
차떼기 정당의 유전자가
아직도 은밀한 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거다.
결국 합리적 보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명박도, 박근혜도, 윤석열도
보수 언론과 보수 유권자, 원로 보수들이
한때는 모두 ‘합리적 보수’라고 추켜세운 인물들이다.
결과는 어땠는가.
부패, 무능, 탄핵, 감옥.
윤어게인을 외치는 극우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혁 보수, 합리적 보수라는 사람들 역시
똑같이 그들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합리적 보수라는 게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가.
이 말은 결국 양두구육이다.
이름만 바꾼 채 국민을 다시 속이려는 시도다.
윤석열과 절연한다고,
과거를 사과한다고,
갑자기 합리적인 보수가 되지는 않는다.
답은 하나다.
부정부패와 반민주주의에 물든 보수 정치인의 대대적인 물갈이,
그것 말고는 없다.
‘합리적 보수’ 라는 말로 더 이상 국민을 속이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