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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클레멘테 (Roberto Clemente): 라티노선수 최초 명예의전당 입성


그리고 로베르토 클레멘테의 비극적인 스토리

로베르토 클레멘테 (Roberto Clemente)는 1934년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났고, 1955년 데뷔 후 18년 동안 피츠버그에서 우익수로 선수 생활을 했음. 클레멘테는 15번의 올스타, 2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12번의 골드 글러브 (Gold Glove), 4번의 NL 배팅 챔피언, 통산 3000안타, 통산 타율 3할 1푼 7리 등 화려한 선수 생활을 했으나, 1972년 12월 31일 니카라과 대지진 생존자들을 위한 긴급 구호 물품을 수송하기 위해 전세 낸 DC-7 비행기가 푸에르토리코 해안에 추락하면서 사망했음.

당시의 비행경로 | 사진출처: simpleflying.com

클레멘테는 위대한 야구선수로서 “The Great One”으로 불렸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갔던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으며, MLB는 그를 기려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Roberto Clemente Award)을 매년 “뛰어난 인품, 지역사회 참여, 자선활동, 경기장 안팎에서 긍정적인 기여를 통해 야구를 가장 잘 대표하는” 선수에게 매년 수여하고 있음.


로베르토 클레멘테 – 최초의 라티노 명전 입성, ‘The Great One’의 위대한 기록 

클레멘테는 1955년 데뷔해서 2할 5푼 5리의 타율을 기록했는데, 시즌 중 음주운전 차량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허리 부상을 입어서 타격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함. 클레멘테는 프로 선수 신분인 상태에서 1958년 미국 해병대 예비군에 입대하여 6개월간 현역 복무를 하였음.

Roberto Clemente | 사진출처: mlbforlife.com

혹독한 해병대 훈련 프로그램은 신체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고, 약 4.5KG의 체중이 늘면서 근력을 키웠고 교통사고로 입은 허리 부상도 치유되었다고 함. 메이저리그 적응 기간을 거친 클레멘테는 곧 5 툴 플레이어 (5-tool player)로서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선수로 뛴 18년 동안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횟수가 12번에 이를 정도였음.

클레멘테는 1972년 9월 30일 뉴욕 메츠를 상대로 4회에 2루타를 쳐서 3000번째 안타를 기록했는데, 이것이 그의 선수 생활 중 마지막 정규 시즌 타석이었음.


인종과 언어의 장벽: 클레멘테가 언론과의 갈등 속에서 겪은 차별과 무시 

클레멘테는 메이저리그 선수 생활 내내 팀 동료, 특히 언론인들로부터 많은 인종 차별을 겪었는데, 이는 아프로-라틴계로서 겪었던 흑인 외모 차별 외에 클레멘테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걸 불편하게 여긴 기자들로부터 무시당했다고 함.

기자들은 클레멘테가 싫어했지만 그의 이름 Roberto의 미국식 발음인 밥(Bob)이나 바비(Bobby)로 불렀고, 스페인어 억양 때문에 조롱하기도 했음. 스페인어를 세 단어도 알지 못하는 기자들은 클레멘테를 어리석게 보이려고 했고, 클레멘테와 미국 기자들 사이의 언어 장벽은 클레멘테가 언론에 대한 불신을 갖게 만드는 분열을 초래했음.


야구장 밖의 영웅, 비극적인 순간까지 이어진 ‘클레멘테 정신’ 

클레멘테는 비시즌 동안 많은 시간을 자선 활동에 할애했고, 그가 가장 열정적으로 주도한 프로젝트는 푸에르토리코에 불우 청소년을 위한 스포츠 센터 건립이었음. 그의 사망 이후 이 프로젝트는 지연됐지만, 그의 미망인이 기업의 후원을 이끌어내 완공되었다고 함.

1972년 아마추어 월드시리즈가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 (Managua)에서 개최되었고, 클레멘테는 푸에르토리코 대표팀 감독으로 이끌면서 방문했음. 3주 후 마나과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자 클레멘테는 즉시 긴급 구호 물품을 준비했지만, 부패한 관리들에 의해 피해자들에게 물품이 도달하지 못하자 자신이 직접 구호 물자를 나르는 비행에 동행하기로 했음.

그가 전세 낸 DC-7 화물기는 기체 결함 이력이 있었고, 비행 인력도 부족했으며 (부조종사와 기관사가 타지 않았음), 과적 중량도 1900KG에 달했음. 이 화물기는 12월 31일 이륙 직후 푸에르토리코 해안에 추락했고,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음.


클레멘테가 닦은 길: 현재 MLB 라틴 선수들의 위상 

클레멘테는 라티노 선수로서 외모 차별, 인종 차별, 언어 차별을 당했지만, 그는 이런 차별을 실력과 인품으로 극복했고 그로 인하여 오늘날 메이저리그에서 라티노 선수의 비중은 30% 수준에 이르고 있음. 2025년 현재 메이저리그에는 약 20여 개국 및 자치령에서 온 선수들이 뛰고 있고, 이들은 통역사를 지원받으면서 클레멘테와 달리 언어 장벽 없이 야구에만 전념하고 있음.

클레멘테는 18년 동안 뛰면서 받은 연봉이 80만 달러도 안 됐지만, 그는 라티노 커뮤니티의 여러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여러모로 도왔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아직도 기억하고 존경한다고 함. 로베르토 클레멘테가 힘들게 닦아놓은 길을 통해 수많은 야구 꿈나무들이 중남미, 카리브해 지역에서 나왔고 앞으로도 메이저리그의 주요 선수 공급원이 될 것으로 보임. Bye~

사진출처: theoleballgame.com

– 아크로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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