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가양대 한동훈 – 정치적 파산 직후 나온 민주주의 타령
국민의짐 윤리위원회에서 제명된 한동훈이 SNS에 올린 한 줄이 가관이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많은 국민은 헛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문장은 정치적 파산을 선고받은 한 인물이 마지막으로 꺼낸 가장 값싼 방패이기 때문이다.
한동훈은 평생을 엘리트 특권의식과 권력의 보호막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검사 시절부터 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누렸고, 장관 시절에는 입법부를 조롱하며 행정부의 오만함을 과시했다.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 자신이 몰락하자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는 것은,
민주주의를 신성한 가치가 아니라 자기 방어용 소품으로 여긴다는 증거일 뿐이다.
법과 원칙을 외치던 위가양대 한동훈, 휴대폰 비밀번호 뒤에 숨다
한동훈의 실체는 이미 채널A 사건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검언유착 의혹 수사의 핵심이었던 그의 휴대전화.
그 안에 많은 진실이 들어 있었지만, 그는 끝내 비밀번호를 공개하지 않았다.
일반 시민에게는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외치던 검사가,
정작 자신이 피의자가 되자 20자리 비밀번호 뒤에 숨어 수사를 무력화했다.
이것이 민주주의자인가?
이것이 책임지는 공직자인가?
민주주의의 핵심은 권한만큼의 책임이다.
그러나 한동훈은 권력을 누릴 때는 강자였고, 책임을 질 때는 비겁자였다.
국회를 조롱하던 위가양대 한동훈, 민주주의를 말하다니
법무부 장관 시절, 한동훈이 국회에서 보여준 태도를 국민은 생생히 기억한다.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말꼬리를 잡고, 비아냥과 냉소로 국회를 조롱했다.
국민의 대표기관을 상대로 깐족대는 화법을 쓰며,
대의민주주의의 심장을 희화화했다. 오죽하면 한깐죽이 됐겠나.
그가 존중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기 권력이었다.
견제와 균형을 무시했고, 행정부의 우월함을 과시했다.
그런 인물이 지금 와서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말한다?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력 상실에 대한 분노일 뿐이다.
윤석열과 위가양대 한동훈, 검찰 권력의 몰락이 만든 아이러니
노무현 정부 이후 국민은 끊임없이 검찰 개혁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윤석열과 한동훈 등은 검찰을 개혁하기는커녕,
앞장서서 그 권력을 정권의 무기로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찰 권력을 가장 오만하게 휘두른 두 사람이
결국 검찰청 폐청과 해체 여론을 폭발시킨 장본인이 되었다.
국민이 검찰을 믿지 않게 만든 것도,
검찰 권력을 없애야 한다고 결심하게 만든 것도
결국에는 바로 윤석열과 한동훈이 주범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가양대 한동훈, 자기 실패를 민주주의로 포장하는 비열함
진짜 민주주의자라면,
자신의 실패가 당과 국가에 끼친 피해에 대해 먼저 사과해야 한다.
하지만 한동훈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몰락을 시스템의 문제로 바꾸고,
자신을 탄압받는 인물로 포장하며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방패로 들었다.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하고,
자신의 불이익에는 과민한 사람.
이것이 한동훈 정치의 본질이다.
위가양대 한동훈 – 윤석열에게 버림받고 친한계에게도 제명된 이유
한동훈은 윤석열의 최측근이었다.
정권의 황태자였다.
그러나 그 윤석열에게조차 버림받았다.
친한계의 핵심이던 장동혁조차
한동훈 제명에 앞장섰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동훈은 정치적으로 쓸모를 잃었을 뿐 아니라,
가장 가까운 동지들에게도 인간적 신뢰를 잃었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 와서
국민과 민주주의를 들먹이는 장면은
비극이 아니라 희극에 가깝다.
민주주의는 패자의 변명용 소품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패자가 꺼내 드는 최후의 변명용 카드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가졌을 때 더 겸손해야 하는 가치다.
한동훈에게 민주주의는
권력을 잃었을 때만 필요한 단어였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