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정치쇼 – 왜 자신의 과거는 지우는가
한동훈을 보면 늘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그는 자신을 설명할 때 오직 두 가지만 강조한다.
“나는 윤석열의 계엄을 반대했다.”
“나는 윤석열 탄핵에 찬성했다.”
물론 그것 자체는 중요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전의 시간이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성장 과정과 권력의 중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정치적 성공의 배경, 권력과의 관계,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책임은 사라지고 마지막 순간의 결별만 강조한다.
윤석열이 법무부장관을 시키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시켜준 걸 한동훈은 인정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자기를 임명했다는 자아도취 망언도 서슴지 않는다.
정치인은 유리한 장면만 편집해서 보여줘서는 안 된다.
국민은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볼 권리가 있다.
한동훈의 정치쇼 – 왜 마지막 순간에만 반대했는가
가장 중요한 질문은 빠져 있다
한동훈은 지금 스스로를 “계엄을 막은 사람”, “탄핵에 찬성한 사람”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핵심 질문은 따로 있다.
왜 권력이 가장 강했을 때는 침묵했는가.
왜 상황이 완전히 기울고 나서야 거리를 두기 시작했는가.
물론 우리는 다 안다. 한동훈이 윤석열에 버림 받았기 때문에 계엄을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한 것을 세상이 다 안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마지막 한 장면이 아니다.
전체 흐름이다.
권력이 살아 있을 때는 함께 가다가, 몰락이 시작된 뒤에만 선을 긋는 행동을 원칙 정치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것이 한동훈의 정치다.
정형근을 후원회장으로 세운 한동훈의 정치쇼
한동훈 정치의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도 나왔다.
바로 고문의 상징인 정형근을 후원회장으로 세운 일이다.
정형근은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대표적인 공안검사 출신 인물이다.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강압 수사와 인권 탄압 논란으로 오랫동안 비판 받아온 인물이다. 오래 전에 정치권에서 용도폐기 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정치적 자산처럼 전면에 세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동훈은 주장한다. 이번 선거는 정형근의 선거가 아니고 한동훈의 선거라고. 그러니 아무 문제 없단다. 한동훈의 정치적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언행이다.
결국 한동훈 정치가 입으로만 말하는 “새 정치” 역시 과거 권위주의 정치와 단절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겉으로는 세련된 이미지를 내세우지만, 실제 정치적 감수성은 낡은 권력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것을 스스로 증명한다.
말만 화려했던 한동훈의 정치쇼 – 책임 없는 수사학
한동훈 정치의 핵심은 늘 “보이는 언어”였다.
짧고 강한 문장, 상대를 압박하는 말투(고소라는 단어를 입에 담고 산다), SNS에서 소비되기 좋은 장면들.
하지만 정치는 말솜씨가 아니다. 국민 삶에 대한 책임이다.
인사 실패와 국정 혼란이 이어져도 그는 늘 비슷했다.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책임지는 행동은 없었다.
사과는 추상적이고, 책임은 모호했고, 결정적 순간마다 빠져나갈 여지를 남겼다. 당 게시판 사건으로 국민의힘에서 제명될 때도 사과는 짧고 형식적이었다.
그래서 한동훈은 보궐선거에 당선되면 안 된다
지금 우려되는 것은 한동훈이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하는 상황이다.
만약 그가 다시 정치 중심에 복귀한다면 보수 정치권은 또다시 잘못된 메시지를 학습하게 된다.
“말만 잘하면 된다.”
“이미지만 좋으면 된다.”
“정책보다 스타성이 중요하다.”
이런 정치가 반복될수록 보수는 더 공허해진다. 그릇된 팬덤에 의존하고 셀럽 정치가 판을 치게 된다.
국회의원은 방송 패널도 아니고 더더구나 연예인도 아니다.
법안을 만들고, 국가 방향을 설계하며, 국민 삶에 책임지는 자리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동훈이 보여준 정치의 핵심은 책임 정치보다 이미지 정치에 불과하다.
원칙보다 타이밍, 책임보다 수사학, 철학보다 연출이 더 강했다.
그가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는 순간, 보수는 쇄신 기회를 잃고 다시 팬덤 정치와 언론 정치에 기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셀럽 정치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
정치는 쇼가 아니다.
정치는 삶을 책임지는 일이다.
이제 유권자들은 화려한 말보다 실제 책임을 봐야 한다.
마지막 순간의 태세 전환보다, 그 이전에 어떤 권력과 함께했고 어떤 책임을 졌는지를 봐야 한다.
셀럽 정치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 전통시장 방문조차도 할머니 팬덤을 끌고 가는 한동훈의 이미지 정치는 끝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여주는 정치”가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는 정치”다.
다음 편
[시민] 독자에서 미디어 비평가로의 진화
– 아크로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