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과 장동혁 – 원칙은 사라지고 생존만 남았다
정치인의 진짜 모습은 평상시가 아니라 국가적 위기에서 드러난다.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와 이어진 윤석열 탄핵 정국은 국민의힘 내부 권력 지형을 뒤흔든 결정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동훈과 장동혁이라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때는 같은 길을 걷던 정치적 동지였지만, 계엄과 탄핵은 두 사람의 운명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그 과정에서 국민이 확인한 것은 원칙도, 철학도 아닌 기회주의적 생존 본능이었다.
한동훈과 장동혁 – 탄핵 국면에서 드러난 원칙 없는 입장 번복
처음 두 사람 모두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한동훈은 돌연 탄핵 찬성으로 선회하며 윤석열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반면 장동혁은 ‘보수 결집’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친윤 진영의 논리 속으로 되돌아갔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선택을 국가와 헌법을 위한 결단이라고 설명했지만, 국민의 눈에는 정치적 계산에 따른 입장 변경으로 비쳤다.
특히 2024년 12월 비상계엄 당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장동혁의 모습은 잠시나마 상식적인 판단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후 그는 다시 탄핵 반대의 선봉에 섰고, 친윤 진영의 핵심 논리를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돌아갔다.
한동훈 역시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탄핵을 반대했지만, 자신이 윤석열의 체포 대상 명단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에야 탄핵 찬성으로 방향을 틀었다.
국민이 보기에 두 사람 모두 국가보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먼저 고려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보수 원리주의로 돌아간 장동혁
한동훈이 “탄핵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며 정면 돌파를 선택했을 당시, 장동혁 역시 상당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최종 선택은 헌법적 가치가 아니라 진영 논리였다.
계엄 해제에는 찬성했지만 이후에는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체포 반대 시위에 참여했고, 심지어 “계엄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하면서 윤석열을 옹호하는 분위기에 동참했다.
이 순간 장동혁은 보수 정치인이 아니라 보수 원리주의의 상징으로 회귀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헌법을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 진영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정치. 그것이 판사 출신 장동혁이 선택한 길이었다.
한동훈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고 한동훈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시 그는 집권 여당 대표였지만 윤석열의 비상계엄 계획조차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대통령과의 파국을 막아내지 못한 정치력의 부재 역시 분명한 책임이다.
더욱이 계엄 해제 직후에는 국무총리 한덕수와 함께 공동 국정 운영 체제를 만들겠다는 반 헌법적 구상을 기자회견에서 밝히기도 했다. 어처구니 없는 발상에 많은 국민은 분노는커녕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결국 시간이 흐른 뒤 윤석열 탄핵에 찬성하면서도 자신이 계엄을 막아냈다는 정치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모습은 많은 국민에게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위기 속에서 당을 하나로 묶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보수 진영의 붕괴를 막지 못했다는 책임 또한 피하기 어렵다.
한동훈과 장동혁 – 은혜도 의리도 없었던 정치
장동혁은 결국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한동훈과 결별했다.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최고위원직을 가장 먼저 사퇴하며 한동훈 지도부 붕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과거 자신을 정치권 중심으로 끌어올려 준 사람이 한동훈이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정치적 의리도, 고마움도 사라졌다.
남은 것은 오직 자신의 당권과 미래뿐이었다.

한동훈과 장동혁 – 공유했던 것은 가치가 아니라 이해관계였다
한때 두 사람은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정치적 동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계엄과 탄핵이라는 국가적 위기는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들이 함께 지키려 했던 것은 보수의 철학도, 국가의 미래도 아니었다.
결국 공유했던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였고,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순간 동지는 가장 치열한 경쟁자가 되었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타협도, 신뢰도 남아 있지 않다. 남은 것은 서로를 향한 퇴로 없는 공격뿐이다.
12·3 비상계엄은 윤석열 정권만 무너뜨린 사건이 아니었다.
그날은 한동훈과 장동혁이라는 두 정치인의 운명이 완전히 갈라진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은 대한민국 보수 정치가 얼마나 원칙보다 권력에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단순한 결별을 넘어 정치적 전쟁으로 변해 버린 한동훈과 장동혁의 관계를 더 자세히 살펴본다.
– 아크로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