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전쟁 – 검사와 판사의 정치 실험, 결국 서로를 무너뜨리는 부메랑이 되다
정치에는 늘 ‘누가 누구를 키웠는가’라는 계보가 존재한다. 윤석열은 한동훈을 정치의 전면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한동훈은 다시 정치 경력 0.5선에 불과했던 장동혁을 국민의힘 권력의 핵심으로 밀어 올렸다.
판사 출신 장동혁과 검사 출신 한동훈. 법조계에서는 화려한 이력을 자랑했을지 모르지만, 정치에서는 철저한 초보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발판 삼아 권력을 키우는 정치적 동맹을 선택했다.
하지만 정치는 법정이 아니다. 충성만으로 권력은 유지되지 않는다. 1~2년 뒤 두 사람이 맞이할 파국은 정치 초보자들의 오만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됐다.
이제 장동혁과 한동훈의 전쟁은 다시 2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다. 그 시작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장한전쟁 – 윤석열의 후광으로 탄생한 한동훈 체제
한동훈은 윤석열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낸 뒤, 2023년 12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선출됐다. 정치 경험이라고는 사실상 전무했던 인물이 집권당의 얼굴이 된 것은 윤석열이라는 절대적 후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비대위 출범 직후 한동훈은 모두를 놀라게 하는 인사를 단행한다.
당시 정치 경력 1년에 불과했던 장동혁 의원을 당 사무총장에 임명한 것이다.
장동혁은 2022년 충남 보령·서천 보궐선거에서 처음 국회의원이 된 인물이었다. 당의 조직과 재정을 총괄하는 핵심 요직을 맡기에는 경험도 검증도 부족했다.
그럼에도 한동훈은 장동혁을 자신의 최측근으로 선택했다. 둘 다 사법고시 출신이라는 엘리트 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이 순간부터 두 사람의 정치적 운명공동체가 시작됐다.
장한전쟁 – 총선 참패에도 더욱 강해진 권력동맹
2024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참패했다.
그러나 한동훈과 장동혁의 권력동맹은 흔들리지 않았다.
장동혁은 무난히 재선에 성공하며 정치적 입지를 넓혔고, 같은 해 7월 2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는 사실상 한동훈의 러닝메이트로 나섰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한동훈은 당대표가 되었고, 장동혁은 수석최고위원에 올랐다.
총선 참패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사라지고 오히려 권력은 더욱 강화됐다.
정치 경험도, 당 운영의 축적된 노하우도 부족한 인물들이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의 최고 지도부를 장악하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장동혁은 어느새 ‘한동훈의 오른팔’이자 친한계의 황태자로 자리 잡았다.
장한전쟁 – 시스템 공천은 사라지고 사람만 남았다
한동훈은 총선 과정에서 ‘시스템 공천’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달랐다.
검사와 판사 출신, 그리고 자신과 가까운 인맥이 당의 핵심을 차지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공정과 시스템을 외쳤지만, 결국 ‘자기 사람 심기’라는 권력정치가 반복됐다는 것이다.
당내 다양한 목소리는 점차 설 자리를 잃었고, 리더십은 특정 계파 중심으로 재편됐다.
한동훈은 팬덤 정치에는 열을 올렸지만 정작 정당을 통합하고 운영하는 정치력은 끝내 보여주지 못했다.
장한전쟁 – 장동혁의 한계도 분명했다
장동혁 역시 합리적인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라는 기대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독자적인 정치 철학과 기반을 구축하기보다 한동훈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밧줄에 의존하며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하지만 남의 힘으로 올라간 권력은 스스로 버틸 힘이 없다.
정치적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 채 줄타기 정치에 의존한 결과, 한계는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장한전쟁 –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한동훈은 ‘자기 사람 심기’를 통해 권력을 확대하려 했다.
장동혁은 그 권력에 기대 정치적 성장을 선택했다.
그러나 정치는 충성만으로 유지되는 세계가 아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두 사람의 밀월은 결국 윤석열이라는 거대한 상수와 충돌하며 균열을 맞기 시작했다.
권력으로 맺어진 동맹은 권력이 흔들리는 순간 가장 먼저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눈다.
우리는 이미 그 결말을 알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장동혁과 한동훈의 동맹이 언제, 어떻게 균열되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두 사람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과정을 살펴본다.
– 아크로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