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보수의 민낯 – 구원투수라는 환상, 그리고 처참한 배신
몇 년 전 대한민국 보수 진영을 강타했던 ‘청년 정치’와 ‘이준석 현상’은 낡고 굳어버린 보수를 바꿀 마지막 희망처럼 비쳐졌다. 기성 정치의 권위주의와 계파 싸움에 지친 국민들은 젊은 세대가 등장하면 보수가 상식과 혁신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청년 정치는 구태를 혁신하기는커녕, 기성 정치의 가장 나쁜 습관부터 가장 빠르게 흡수했다. 권력 앞에서는 줄을 서고, 팬덤에는 영합하며, 상대를 공격하는 기술만 익혔다. 신선함은 사라졌고, 남은 것은 권력의 단맛에 취한 기회주의뿐이다.
‘청년’이라는 간판만 달았을 뿐, 정치의 내용은 오히려 기성 정치보다 더 빠르게 썩어갔다. 보수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가 미래를 만들기는커녕 스스로 미래를 갉아먹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것이다.

MZ 보수의 민낯 – 정책은없고혐오만남았다
오늘날 여의도에서 정책과 국가 비전을 이야기하며 주목 받는 청년 정치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대신 그들이 가장 자주 등장하는 곳은 SNS와 자극적인 정치 프로그램이다. 그곳에서 쏟아내는 말은 정책 토론이 아니라 상대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언어가 대부분이다.
세대를 갈라 치고, 성별을 대립시키며, 분노를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것이 이들의 주된 전략이 됐다.
혐오가 조회 수를 만들고, 자극이 정치적 체급을 키운다는 공식을 누구보다 빠르게 익힌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가 일시적인 선동에는 성공할지 몰라도 사회를 통합하거나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MZ 보수의 민낯 – 선배에게 배운 것은 정치가 아니라 싸움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변한 데에는 국민의힘 내부 구조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치를 가르쳐 줄 만한 존경 받는 선배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당 안에는 법기술과 계파 정치에 능숙한 인물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청년 정치인들이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민생을 해결하는 정치인의 언어가 아니었다.
상대를 제거하는 방법, 편을 가르는 기술, 팬덤을 결집시키는 선동의 방식이었다.
결국 청년 정치인은 독립적인 정치인이 아니라 기성 권력의 돌격대장이 되었다. 유튜브와 강성 팬덤에 기대 정치적 존재감을 키우고, 공부와 정책보다 자극적인 한마디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 익숙해졌다.
청년 특유의 패기와 순수함은 찾아보기 어렵고, 권력에 대한 욕망만 더욱 선명해졌다.

MZ 보수의 민낯 – 청년 오디션이 드러낸 보수의 민낯
이러한 현실은 올해 3월 국민의힘이 진행했던 광역의원 비례대표 청년 후보 공개 오디션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미래 인재를 발굴해야 할 자리가 극단적 팬덤의 경쟁장이 되어버렸다.
상위권 후보들 가운데 일부는 이른바 ‘윤 어게인’을 앞세우며 강성 지지층의 표를 얻기 위해 과격한 주장과 극단적 발언을 이어갔다.
당 내부에서조차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청년 정치의 미래를 보여줘야 할 무대가 극단주의 경쟁장이 되어버린 현실은 보수 정치가 어디까지 무너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더구나 공개 오디션의 결과 무엇을 얻었는지도 알 수 없는 행사에 불과했다.
MZ 보수의 민낯 – 자작극 논란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정치의 수준이다
최근 개혁신당 소속 부산시장 후보였던 정이한의 ‘테러 자작극’ 사건 역시 청년 정치의 도덕성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선거를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의혹 끝에 결국 구속까지 이어진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런 사람을 청년 후보자로 내세운 이준석과 개혁신당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이후 제기된 이야기들이다.
국민의힘 부산시장 측이 보수 단일화를 추진하면서 정이한에게 부산시 청년부시장 자리를 제안했다는 밀약설까지 나오면서 많은 시민들이 정치의 수준을 의심하게 됐다.
사실 여부와 별개로 이런 의혹 자체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수 정치가 국민에게 얼마나 낮은 신뢰를 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누구와도 손잡고, 청년이라는 타이틀만 있으면 요직까지 거래 대상으로 삼는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정치의 실패다.
청년이라는 이름만으로 미래는 오지 않는다
청년은 나이가 아니라 정치의 태도로 증명되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가 기성 정치보다 더 빠르게 혐오와 팬덤 정치에 물들고, 계파의 돌격대가 되는 순간 ‘청년 정치’라는 간판은 아무 의미가 없다.
보수가 정말 쇄신을 원한다면 청년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품격부터 회복해야 한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팬덤의 환호가 아니라 정책을 공부하는 시간이며, 자극적인 말싸움이 아니라 국민을 설득하는 실력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지금의 MZ 보수는 기성 정치를 바꾸는 세대가 아니라, 기성 정치의 실패를 더 빠르게 재생산하는 또 다른 얼굴로 기억될 것이다.
– 아크로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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