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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정치의 폐해④] 팬덤이 정당을 삼켰다: 민주주의의 탈을 쓴 ‘정치적 교주주의’ - 아크로폴(ACROP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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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정치인 - 팬덤정치

[정당정치의 폐해④] 팬덤이 정당을 삼켰다: 민주주의의 탈을 쓴 ‘정치적 교주주의’

대중 참여인가, 폭력적 정체성 정치인가

현재 대한민국 정치는 대중 참여의 탈을 쓴 폭력적 정체성 정치에 머물러 있다.

정당은 더 이상 국민에게 공공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정치 플랫폼이 아니다. 특정 보스의 정치적 생존과 방어를 위한 사당으로 전락하고 있다. 여기에 강성 팬덤 정치가 결탁하면서 한국 정치의 병리 현상은 더욱 심각해졌다.

팬덤정치는 겉으로 보면 정치 참여의 확대처럼 보인다. 당원 수가 늘고, 온라인 토론이 활발해지고, 정치적 열정도 높아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다른 의견을 허용하지 않는 팬덤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치적 부족주의다. 당내 자정 기능을 마비시키고, 비판을 배신으로 만들며, 정당을 특정 인물의 방어막으로 바꿔버린다.

과거에는 보스가 계파를 지배했다. 이제는 팬덤이 보스를 지킨다

과거 정당은 권력자 중심의 통제형 계파정치였다. 하지만 지금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보스와 강성 팬덤이 결탁한 계파정치가 정당을 지배하고 있다.

합리적인 정책 토론은 사라지고, 이념의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노력도 실종됐다. 대신 특정 인물에 대한 충성도가 정당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됐다.

“무슨 정책을 주장하는가?”보다 “누구 편인가?”가 중요해졌다. “그 주장이 옳은가?”보다 “우리 편을 공격했는가?”가 먼저 판단 기준이 된다.

이것은 정당정치가 아니다. 팬클럽의 정치적 집단행동에 불과하다.

당내에서 소신을 밝히는 순간 공격받고, 지도자에 대한 비판은 해당 인물의 정치적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로 규정된다. 결국 정치인은 국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팬덤의 눈치를 보게 된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집회 군중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 당일 서울 도심의 집회 현장 /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CC0)

민주주의의 탈을 쓴 ‘정치적 교주주의’

더 심각한 문제는 특정 정치인을 바라보는 태도다.

정치인은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 받은 공적 대표다. 그런데 팬덤 정치에서는 정치인이 ‘나를 대신해 싸워주는 구원자’가 된다.

정책보다 충성심이 앞서고, 비판보다 신앙이 앞선다.

지도자의 잘못을 지적하면 “배신자”가 되고, 다른 의견을 내면 “반대파의 음모”로 몰린다. 합리적인 비판조차 적대 행위로 취급된다.

이쯤 되면 민주주의는 이름만 남는다.

근대 정당의 핵심은 토론과 경쟁, 타협과 견제, 책임과 법치다. 그러나 팬덤에 사로잡힌 정당에서는 이런 원칙들이 무너진다.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맹목적 충성과 이단 심판이다.

보수는 왜 같은 실패를 반복했는가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 정당이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과거의 실패를 냉정하게 성찰하고, 합리적 보수로 재편하며, 중도층과 일반 국민의 상식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보수 정당은 극단적 강성 팬덤과 아스팔트 보수 세력에 끌려 다니는 모습을 반복했다. 그 결과 당내에서는 지도자와 당권파에 대한 비판이 쉽게 ‘당을 흔드는 행위’로 규정됐다.

윤심은 사실상 성역이 됐다.

비판하는 사람은 개혁 세력이 아니라 내부의 적으로 취급됐고, 당내 비판파와 소신파는 집단적 압박에 시달렸다.

그 결과 보수 정당은 중도층과 보편적 유권자의 상식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결국 윤석열 정권의 실패와 탄핵이라는 결과를 맞았다. 박근혜 탄핵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실패의 원인을 제대로 성찰하지 못한 정당은 또다시 같은 구조를 반복한다. 보스를 바꿔도 팬덤정치와 사당화 구조가 남아 있다면 실패는 언제든 재현된다.

2016년 탄핵소추안 표결 당일 국회 앞 풍경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이뤄진 국회 앞 /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CC0)

민주당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당 역시 강성 팬덤에 갇히면서 사당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른바 ‘문빠’ 현상에서, 당시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한 ‘개딸’ 등 강성 지지층의 정치적 영향력까지, 팬덤이 당내 의사결정에 강한 압력을 행사하는 현상이 반복됐다.

당내 비판파나 소신파는 ‘수박’이라는 낙인을 받으며 공격받기도 했다. 의견의 차이를 정책적 논쟁으로 해결하는 대신, 사람을 분류하고 적대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입을 막으려는 행태가 나타났다.

그 결과 정당 내부에서 정책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해야 할 정치인들이 팬덤의 심기를 먼저 살피는 상황이 벌어졌다.

정작 진보정당이 앞장서야 할 서민·노동·민생 의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당이 국민을 위한 정책 플랫폼이 아니라 지도자의 정치적 입지를 방어하는 방패로 변한다면, 보수든 진보든 결과는 같다.

국민이 사라진 정당만 남는다.

이제는 ‘보스 정치’와 ‘팬덤 정치’를 동시에 끝내야 한다

대한민국 정당정치는 근본부터 바뀌어야 한다.

보스가 사라졌는데도 그 주변의 정치적 ‘마름’들이 계속 권력을 행사하는 정당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

특정 계파의 수장이 공천권을 휘두르고, 국회의원이 국민보다 당권자의 눈치를 보는 구조도 폐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천권을 당 지도부가 독점하는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공천권자의 관리인이 되는 순간, 정치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상향식 공천으로 전면 쇄신하고 당원과 지역 유권자의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 당내 경선과 의사결정 과정도 특정 지도부가 마음대로 좌우할 수 없도록 제도적 견제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소수 팬덤에 의존하는 정치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팬덤은 정치의 일부일 수 있다. 그러나 팬덤이 정당의 주인이 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정당의 주인은 보스도 아니고, 강성 당원도 아니며, 특정 정치인을 숭배하는 팬덤도 아니다.

국민이다.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어도 정당의 구조가 그대로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의 간판만 바뀔 뿐, 국민을 동원하고 표를 얻은 뒤 권력을 나눠 갖는 낡은 정치가 반복될 뿐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진짜 민주주의로 나아가려면 답은 하나다.

보스 정치도 끝내고, 팬덤 정치도 끝내야 한다.

그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정권이 열 번 바뀌어도 대한민국 정당은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조직이 될 수 없다.

정당 유세 현장의 지지자들과 피켓
2021년 12월 3일 전주 유세 현장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과 피켓 /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CC BY 4.0)

– 아크로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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