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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정치의 폐해①] 주인은 사라졌는데 마름들은 왜 아직도 권력을 휘두르는가 - 아크로폴(ACROP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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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들어 인사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

[정당정치의 폐해①] 주인은 사라졌는데 마름들은 왜 아직도 권력을 휘두르는가

보스는 떠났는데 계파는 살아남았다… 여의도 정당정치의 전근대적 민낯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거나 권력자가 무대 뒤로 사라질 때 우리는 흔히 ‘한 시대의 종언’을 이야기한다.

이명박의 퇴장이 그랬고, 박근혜의 탄핵이 그랬다. 노무현의 서거와 문재인의 퇴임, 그리고 윤석열을 둘러싼 거대한 정치적 격랑도 하나의 시대가 끝났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인은 사라졌는데, 그 주인의 이름표를 달고 기득권을 누리던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당이라는 울타리 안에 눌러앉아 새로운 간판을 달고 다시 권력을 행사한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정당정치의 가장 추악한 모습이다.

친이에서 친박으로, 친박에서 친윤으로

현대 민주주의 정당이라면 권력자가 퇴장한 뒤 그를 중심으로 뭉쳤던 정치집단 역시 시대적 소명을 평가 받아야 한다.

잘못이 있다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하고, 시대가 변했다면 새로운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치는 달랐다.

친이가 친박에 밀려 숨죽이고, 친박이 탄핵으로 무너진 자리에는 다시 친윤이라는 변형된 네트워크가 싹을 틔웠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보스가 바뀌면 충성의 대상만 바뀌어 살아 남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책과 이념, 국민의 요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가까운가, 누구에게 공천을 받을 수 있는가, 누가 당내 지분을 쥐고 있는가다.

이게 과연 현대 민주주의 정당인가.

정당이라는 공적 제도 안에서 실제 권력 배분은 여전히 보스와의 친소 관계라는 사적 네트워크에 의해 좌우된다.

결국 한국 정치가 아직도 봉건적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다.

보스는 떠났는데 ‘마름 정치’는 끝나지 않는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당내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했던 잔존 세력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권력의 중심축은 약화됐지만 영남 기득권과 당내 지분을 기반으로 쇄신을 가로막는 수성 정치는 계속됐다.

심지어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과거 대통령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모습까지 나타난다. 집안에 쳐 박혀 있어야 할 이명박 박근혜는 지난 6월 지방 선거 유세장에 나타나는 뻔뻔함을 보였다.

정말 책임을 느낀다면 한발 물러나 후배 정치인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과거의 권력자들이 선거판에 다시 등장해 특정 후보들을 지원하고, 과거의 이름값을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시대는 앞으로 가는데 정치만 뒤로 걸어가는 꼴이다.

윤석열의 시대가 끝났다고 해서 윤석열의 그림자까지 사라진 것도 아니다.

국민의힘 곳곳에는 여전히 친윤의 정치적 흔적과 이해관계가 남아 있고, 이를 중심으로 한 세력 재편이 반복되고 있다.

보스는 퇴장했지만 그를 통해 권력을 얻었던 사람들은 퇴장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새누리당 당사 외벽에 걸린 현수막
새누리당 시절 여당 당사에 걸린 현수막. 간판은 바뀌어도 권력을 나눠 갖는 구조는 그대로였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CC BY-SA 2.0 KR)

민주당이라고 다를까?

민주당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친노가 등장했고, 그것은 다시 친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친명이라는 새로운 계파 정체성이 강하게 부상했다.

정당의 가치와 정책보다 “누가 적통인가”가 중요한 정치가 반복되는 것이다.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했느냐, 문재인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느냐, 이재명과 함께하느냐를 놓고 내부에서 끊임없이 충돌한다.

결국 정당이 특정 계파의 전유물처럼 변질되는 과정이다.

지난 시대의 영향력에 중독된 유시민 역시 최근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둘러싼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며 논쟁의 중심에 서고 있다.

이런 현상 역시 한 시대의 정치적 유산이 새로운 시대의 정치적 자산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현재의 당내 권력투쟁으로 소환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른바 ‘명청 대전’을 비롯한 계파 갈등이 계속된다면 당의 분열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여야 모두 똑같은 함정에 빠져 있다.

사람이 정책을 지배하고, 계파가 정당을 지배한다.

모든 길은 결국 ‘공천권’으로 통한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답은 간단하다.

공천권과 정당 보조금이라는 막대한 정치적 자원 때문이다.

한국 정당에서 국회의원에게 공천은 곧 생존이다. 당내에서 공천권을 가진 세력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니 계파가 쉽게 해체될 리 없다.

보스가 떠나면 계파도 사라져야 하지만, 그 계파가 가지고 있던 공천 지분과 조직, 인맥, 정치적 자산은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이름만 바꾼다.

친이에서 친박으로, 친박에서 친윤으로.

친노에서 친문으로, 친문에서 친명으로.

간판은 바뀌어도 권력을 나눠 먹는 구조는 그대로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다.

정당은 정책적 지향을 공유하는 시민들의 정치적 연대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한국 정당은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충성 경쟁을 벌이고 공천이라는 당근을 배분하는 현대판 정치 피라미드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 현장
더불어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 현장. 계파 갈등은 야당에서도 반복된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CC BY-SA 4.0)

이제는 ‘해체와 재편’이 필요하다

시대적 소명을 다한 세력은 스스로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과거의 공로가 현재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 대통령과 함께했던 세력이라면 그 시대의 성과와 실패를 냉정하게 평가 받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치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치에서는 반대로 과거의 이름을 방패 삼아 현재의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

주인은 사라졌는데 마름들은 영지를 놓지 않는다. 이 얼마나 낡고 비겁한 정치인가.

정당은 영원한 계파의 소유물이 아니다. 국민이 잠시 맡긴 공적 조직일 뿐이다.

그런데도 특정 보스의 이름 아래 뭉친 사람들이 세월이 지나도 자리를 지키며 공천과 지분을 움켜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치적 봉건제의 잔재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시대가 끝났으면 세력도 평가 받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해체하고, 재창당하고, 새로운 가치와 정책으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보스가 떠났는데도 계파가 살아남는 정치, 주인은 사라졌는데 마름들이 권력을 나눠 갖는 정치는 끝내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가 진정한 민주주의 정당으로 진화하려면 가장 먼저 끊어야 할 것은 특정 인물에 대한 사적 충성의 고리다.

간판만 바꾸는 정치로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시대가 바뀌었으면 정치도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여의도의 시계는 영원히 과거에 멈춰 있을 것이다.

– 아크로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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