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정당 보호한다더니, 거대 양당의 의석 싹쓸이 도구로 전락했다
소수정당을 보호하고 표의 비례성을 높이겠다며 도입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오히려 국민을 기만하는 제도로 전락했다. 정치권이 벌이는 대국민 사기극의 극치를 보여 준다.
당초 취지는 분명했다.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많이 배출한 거대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적게 가져가고, 지역구 기반은 약하지만 정당 득표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은 소수정당의 의회 진출을 보장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거대 양당의 꼼수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합법적인 의석 싹쓸이 도구가 되어버렸다.
기존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 선거를 사실상 별개로 계산한다. 그러다 보니 정당 득표율은 40%에 불과한 정당이 지역구에서 압승하면 전체 의석의 60~70%를 차지하는 식의 득표율과 의석수 사이의 심각한 불일치가 발생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명분은 ‘민심 그대로’, 현실은 ‘양당의 위성정당’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내세운 핵심 명분은 간단했다.
“유권자가 정당에 던진 표만큼 의석을 배분하자.”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기 어려운 정의당, 녹색당, 기본소득당 같은 소수·진보정당도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이를 통해 양당 독점 구조를 깨고 다당제와 협치의 정치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거대 정당들은 제도의 취지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과 소수정당들의 연합은 선거법 개정을 추진했고, 야당 자유한국당의 반발 속에서 결국 연동률 50%를 적용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기형적인 형태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연동형 제도는 기본적으로 지역구에서 의석을 많이 차지한 거대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적게 가져간다는 전제에서 작동한다. 그런데 거대 양당은 이 원칙을 우회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아니 처음부터 의도했을지 모른다.
바로 위성정당이었다. 대국민 사기극의 결정체다.

21대 총선의 꼼수, 22대 총선에서 또 반복됐다
21대 총선에서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미래한국당이라는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민주당 역시 이를 강하게 비판했지만 결국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어 맞대응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대거 가져갔고, 선거가 끝난 뒤 위성정당 의원들은 본당으로 흡수·합당됐다.
제도는 연동형인데, 결과는 양당 독점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22대 총선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는 사실이다. 선거제도를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던 거대 양당은 결국 또다시 위성정당을 선택했다.
한 번의 꼼수도 모자라 국민을 대상으로 같은 사기극을 반복한 것이다.
그 결과 소수정당에게 돌아가야 할 비례대표 의석 상당 부분이 거대 양당의 손에 들어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양당 독점을 깨겠다는 약속은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됐다.
소수정당은 들러리가 되고, 유권자는 또 속았다
위성정당에 흡수되거나 의석을 빼앗기면서 진보정당과 개혁정당의 입지는 급격하게 축소됐다.
비례연합에 참여한 소수정당들 역시 거대 정당의 공천 지분과 의석 배분에 매몰되면서 독자적인 정치적 가치와 정체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유권자의 표는 또다시 왜곡됐다.
국민이 작은 정당에 표를 던져도 거대 정당의 계산법에 따라 의석이 결정되는 현실. 이것이 과연 ‘민심 그대로의 정치’인가?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에 대한 국민의 냉소를 키운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법의 취지를 지키기는커녕 법의 허점을 찾아 당당하게 이용하는 모습을 반복한다면 국민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정치는 결국 자기들 의석을 챙기는 게임”이라는 냉소만 커질 뿐이다.

이제는 위성정당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물론 위성정당을 단순히 법으로 금지한다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법을 피하기 위한 또 다른 변종 페이퍼 정당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역구 후보 추천과 비례대표 후보 추천을 일정하게 연동하는 방식으로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거대 정당이 지역구 선거에서는 본당 이름으로 출마하고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별도의 위성정당을 내세우는 꼼수를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양당 역시 바뀌어야 한다.
“상대가 위성정당을 만들면 우리만 손해 본다”는 논리로 서로 꼼수를 정당화하는 악순환부터 끊어야 한다.
비례대표 의석부터 대폭 늘려야 한다
현재 국회의 비례대표 의석은 47석에 불과하다.
전체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극히 일부다. 이렇게 비례대표 의석이 적은 상황에서는 거대 양당이 한 석이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위성정당을 만들 유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례대표 의석 자체를 대폭 확대해 표의 비례성을 높여야 한다.
그렇다고 위성정당 때문에 아예 연동형 제도를 폐기하고 과거의 병립형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꼼수가 제도를 망쳤다고 제도를 버릴 것이 아니라, 꼼수가 통하지 않도록 제도를 고쳐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는 살리되 위성정당을 창당할 경우 국고보조금 회수, 선거보조금 제한 등 강력한 재정적 불이익을 부과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복잡한 선거제도가 아니다.
내가 던진 한 표가 실제 의석으로 제대로 반영되는 정치다.
그런데 지금의 선거제도는 국민에게 비례성을 약속해놓고 거대 양당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줬다.
이제는 분명히 해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문제인 것이 아니다. 국민의 표를 자기들 의석으로 바꿔먹는 거대 양당의 꼼수, 나아가 사기극이 문제다.
선거제도는 정당의 생존을 위한 게임판이 아니라 국민의 의사를 의석으로 번역하는 장치여야 한다.
양당의 꼼수가 계속되는 한, 아무리 그럴듯한 이름의 선거제도를 만들어도 국민은 또 속을 수밖에 없다.
정당을 보호하는 선거제가 아니라 유권자의 표를 보호하는 선거제로 바꿔야 한다.

– 아크로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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