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법치와 민주주의·복지…정작 당 안에서는 사라진 핵심가치
대한민국 양대 정당이 내놓는 자기 당의 핵심가치는 무엇일까.
한쪽은 자유와 법치, 시장경제를 말할 것이다. 다른 한쪽은 민주주의와 복지, 평등을 외칠 것이다.
듣기만 하면 그럴듯하다. 정당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철학과 비전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막상 정당이 작동하는 내부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화려한 이념적 깃발은 국민을 위한 철학이라기보다 오직 권력을 잡기 위해 내걸어 놓은 영업용 간판에 가까워 보인다.
대한민국 정치에는 정말 보수와 진보가 존재하는가?
냉정하게 말하면 아니올시다.
정책과 철학으로 경쟁하는 정치가 아니라, 어느 계파 출신인가를 따지는 혈통정치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는 철학 대신 ‘누구 사람인가’를 묻는다
보수 정당의 가장 큰 문제는 시대에 맞는 보수의 철학을 재정립하고 체계화하는 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복지와 성장의 균형은 어떻게 잡을 것인지,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에 어떤 보수적 해법을 제시할 것인지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국민의힘 당내 정치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누구와 가까운가?”“누구의 사람인가?”“어느 계파에 줄을 섰는가?”
결국 정책이 아니라 권력자와의 거리로 정치적 생존 여부가 결정된다.
어제의 충신이 오늘은 배신자가 되고, 오늘의 개혁파가 내일은 다시 주류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철학이 중심이라면 사람이 바뀌어도 원칙은 남아야 한다.
그러나 계파가 중심인 정당에서는 보스가 바뀌면 원칙도 바뀐다.
그것은 보수의 정치가 아니다. 그저 권력 주변을 맴도는 정치적 카르텔일 뿐이다.

진보 정당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이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복지국가의 미래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했는가.
노동시장 개혁과 노동자의 권리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논쟁했는가.
증세와 복지, 성장과 분배, 부동산과 자산 불평등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철학을 놓고 경쟁했는가.
물론 정책 논쟁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내 권력투쟁의 핵심으로 들어가면 결국 친노, 친문, 친명, 비명 등 계파의 이름표가 앞에 등장한다.
정책보다 사람이 먼저다.
철학보다 충성도가 먼저다.
소신보다 계파가 먼저다.
정치인이 어떤 정책을 주장하는지보다 “누구 편인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 정당은 이념 정당이 아니라 파벌 조직으로 변질된다.
정책으로 겨루지 않고 계파의 핏줄로 겨루는 정치가 되는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정치가 17세기 예송논쟁을 닮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 조선시대의 예송논쟁이 떠오른다.
17세기 조선의 정치세력은 국가의 백년대계보다 명분과 적통성을 둘러싼 싸움에 매몰됐다.
누가 정통인가. 누가 명분을 차지하는가. 누가 더 올바른 계승자인가.
국가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보다 정치적 정통성을 둘러싼 싸움이 더 중요했다. 다 망한 명나라 황후의 상복을 몇 년 입느냐를 가지고 싸운 한심한 작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진짜 적통인가?”“누가 보스의 진정한 후계자인가?”“누가 원조인가?”
이런 질문들이 정치판을 뒤덮는다.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정당의 족보가 아니다.
집값이 어떻게 될지, 일자리는 어디서 만들어질지, 연금은 지속될지, 아이를 낳아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사회가 될지다.
그런데 정치권은 국민의 삶보다 자기 계파의 혈통과 정통성을 놓고 싸운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연금·노동·교육개혁은 계파 싸움 뒤로 밀려난다
가치와 철학이 사라진 정당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다.
정책적 지향점이 없으니 정권을 잡아도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하기 어렵다.
정권을 빼앗겨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그러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람이 바뀌고 간판이 바뀌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국민의 삶을 짓누르는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연금개혁, 노동시장 개혁, 교육개혁, 저출생과 인구절벽, 지방소멸, 부동산 문제.
하나같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문제들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이런 거대한 과제들이 계파 간 주도권 싸움에 밀려난다.
국가의 미래보다 당내 공천권이 중요하고, 국민의 삶보다 다음 전당대회가 중요하다.
이것이 과연 정당인가.
소신 있는 정치인은 왜 살아남지 못하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정당 내부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당에는 원래 다양한 생각이 존재해야 한다.
보수 안에서도 시장만능주의와 사회적 보수주의가 다를 수 있고, 진보 안에서도 성장과 분배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
그런 차이가 토론을 통해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계파정치에서는 생각이 다른 순간 문제가 된다.
정책이 달라서 비판 받는 것이 아니라 “가문의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소신을 지키면 배신자가 되고, 침묵하면 충성파가 된다.
결국 정치인은 국민에게 충성하는 대신 계파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치에서 어떻게 좋은 정책이 나오겠는가.

대한민국 정당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혈통’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에 정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계파가 아니다.
새로운 보스도 아니다.
새로운 정치적 혈통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가치와 철학의 복원이다.
보수라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명확하게 말해야 한다.
진보라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철학을 놓고 국민 앞에서 경쟁해야 한다.
“누구 사람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주장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어느 계파인가”가 아니라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가”를 따져야 한다.
그것이 정당정치의 출발점이다.
지금처럼 정책이 아니라 혈통으로 싸우는 정당은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없다.
대한민국 정당에 보수와 진보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현대판 성골체제다.
누구의 피가 흐르는가. 누구의 적통인가. 누구에게 충성했는가.
이것을 따지는 정치가 계속된다면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어도 대한민국의 미래는 달라지지 않는다.
정권은 교체될 수 있다. 그러나 계파정치가 그대로라면 정치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이제 국민이 물어야 한다.
“당신은 누구의 사람인가?”가 아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정치하는가?”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정당이라면, 아무리 보수와 진보라는 거창한 간판을 달고 있어도 국민에게 필요한 정당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 아크로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