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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의 함정①] 소선거구제가 만든 ‘승자독식 정치’ - 아크로폴(ACROP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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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제15대 총선 서울 종로구 후보 벽보

[선거제도의 함정①] 소선거구제가 만든 ‘승자독식 정치’

유권자가 아니라 선거제도가 양당제를 만든다

대한민국 정치는 극단적인 양당제에 갇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유권자들이 보수와 진보로 갈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소선거구제 자체가 양당 중심의 정치구조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제도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는 기본적으로 한 선거구에서 1명의 의원을 최다득표자로 뽑는 소선거구제다. 한마디로 승자독식이다.

1위만 당선된다. 2위도, 3위도 아무리 많은 표를 얻었더라도 의석을 얻지 못한다. 49%를 얻고도 51%에게 패하면 의석은 0석이다.

유권자가 양당제를 원해서가 아니라, 양당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내 표가 버려질 수 있다는 선거제도 때문에 양당으로 표가 몰리는 것이다.

중선거구제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한민국의 선거제도 역사를 보면 지금의 소선거구제가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유신정권과 제5공화국 시절 대한민국은 1개 선거구에서 2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운영했다.

물론 당시의 중선거구제 역시 민주주의적 이상에 따라 만들어진 제도는 아니다.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여당이 안정적으로 의석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선거제도는 여당이 지역구에서 최소 한 석을 확보할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즉, 중선거구제 역시 정치권력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변화가 찾아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1988년 제13대 총선을 앞두고 소선거구제가 확립됐다.

당시 선거제도는 민주화 이후 각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타협이 복잡하게 맞물린 결과였다. 당시에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라는 이른바 ‘1노3김’ 정치구도가 대한민국 정치를 지배하고 있었다.

각 정치세력은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과 지역적 영향력을 중심으로 의석을 확보하려 했다. 영남은 영남대로, 호남은 호남대로, 충청은 충청대로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지키려는 셈법이 작동했다.

그 결과 1지역구 1인을 뽑는 소선거구제가 채택되었다.

그리고 1988년 총선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바로 여소야대였다.

민주화 이후 첫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고 야당들이 의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이것이 민주화의 중요한 성과처럼 보였다.

하지만 역설이 시작됐다. 민주화를 위해 도입된 선거제도가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주의 정치와 거대 양당 독점의 씨앗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
1988년 10월의 노태우 대통령. 민주화 이후 첫 총선인 제13대 총선에서 여당은 과반을 얻지 못했고, 이때 확립된 소선거구제가 이후 지역주의와 양당 독점의 씨앗이 됐다. 사진: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1위만 살아남는 정치에서 제3당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소선거구제의 문제는 너무나 명확하다. 1위만 당선된다.

정당이 전국에서 30~40%의 지지를 받아도 지역구에서 1위를 차지하지 못하면 의석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특정 지역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정당은 전국적인 득표율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가져갈 수 있다.

이 구조에서는 제3의 정당이 성장하기 어렵다. 유권자가 제3정당을 지지하고 싶어도 고민하게 된다. 유권자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후보가 아니라 상대방의 당선을 막을 수 있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게 된다.

이것이 소선거구제가 만들어내는 전략적 투표다. 따라서 소선거구제는 구조적으로 양당제로 수렴하기 쉬운 제도다.

물론 대한민국의 양당제에는 지역주의와 이념 대립, 정당조직, 정치문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그러나 소선거구제가 이러한 양당 중심 구조를 강화하는 핵심 제도적 장치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선거제도를 바꾸는 사람은 현역 국회의원들이다

여기서 대한민국 정치개혁의 가장 웃기면서도 비극적인 역설이 등장한다.

선거제도를 바꾸는 당사자가 현역 국회의원들이라는 것이다.

소선거구제에서 수십 년 동안 지역 기반을 다져온 거대 양당의 현역 의원들에게 선거구 확대는 무엇인가? 개혁이 아니라 재선 위험요인이다.

굳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제3당과 의석을 나눠 가질 이유가 없다. 말로는 정치개혁을 외치면서도 실제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들어가면 당리당략이 작동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선거구를 넓히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지방과 농어촌에서는 몇 개의 시·군을 하나의 선거구로 묶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면 지역 대표성이 약화되고 지방이 정치적으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대선거구에서 한 정당이 여러 명의 후보를 공천할 경우에는 정당 간 경쟁보다 당내 계파 간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중대선거구제가 무조건적인 만능 해법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해서 현재의 승자독식 구조를 영원히 유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제20대 대통령선거 투표소 앞에 줄을 선 유권자들
제20대 대통령선거 투표일, 서울 청운효자동 제3투표소 앞에 줄을 선 유권자들. 승자독식 구조에서 유권자는 가장 원하는 후보가 아니라 상대의 당선을 막을 후보를 고르게 된다. 사진: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이제는 선거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양당제의 폐해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현재의 소선거구제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물론 하루아침에 제도를 바꿀 수는 없지만 권역별 중대선거구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도시 지역은 3~5인 정도를 뽑는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하고, 인구밀도가 낮은 농어촌 지역은 지역 대표성 문제를 고려해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혼합형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실질적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결합해야 한다. 정당이 얻은 득표율과 국회 의석수가 최대한 일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역구에서 손해를 본 정당이라도 비례대표 의석을 통해 정당 득표율에 걸맞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표가 제대로 의석에 반영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성정당은 금지해야 한다. 제도를 만들어놓고 거대 정당이 꼼수로 우회한다면 선거제도 개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선거구를 정하는 구조부터 끊어라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선거구 획정의 주체를 결정하는 일이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정치적 생존과 직결된 선거구를 사실상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결정하는 구조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선수에게 경기장을 설계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와 정당의 이해관계에서 독립된 제3의 독립기구에 선거구 획정의 실질적인 전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인구, 생활권, 지역 대표성 등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선거구를 결정해야 하고, 정치인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선거 규칙을 만드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제16대 총선 지역별 투표결과 지도
제16대 총선(2000년) 지역별 투표결과. 특정 지역을 석권한 정당이 전국 득표율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 사진: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고려)

국민에게 진짜 선택권을 돌려줘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의 큰 문제 중 하나는 국민에게 선택지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국민은 자신이 가장 원하는 정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정치세력을 막기 위한 투표를 하게 된다.

국민이 양당제를 원한 것이 아니다. 선거제도가 양당제를 강요한다.

물론 소선거구제 하나만 폐지한다고 대한민국 정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처럼 거대 양당이 모든 정치적 선택지를 독점하고, 유권자가 사표를 걱정하며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둘 중 하나를 강요하는 제도가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만큼 다양한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국민의 선택이 실제 국회 의석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 아크로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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