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수많은 특권 가운데 국민에게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이다.
일반 시민이 중대한 범죄 혐의를 받으면 수사와 구속영장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국회라는 울타리 뒤에서 사법절차를 지연시키거나 정치적 방어막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원의 특권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패인가, 아니면 범죄 혐의를 받는 정치인을 보호하는 방탄조끼인가?
원래 취지는 분명했다. 문제는 그 취지가 현실 정치에서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됐느냐는 것이다.
왕의 탄압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특권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은 권력자의 의회 탄압을 막기 위해 발전해 온 제도다.
영국 의회에서 발전한 의회 특권은 1689년 권리장전에 명문화됐다. 핵심은 국왕이 의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의원의 의정활동을 탄압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면책특권 역시 의원들이 권력자를 자유롭게 비판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장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권위주의 정권 시절 이 특권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1979년 박정희 정권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영삼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신체제와 박정희 정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결국 집권세력은 김영삼의 의원직 제명안을 밀어붙였다.
이 사건은 권력이 비판적인 야당 정치인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따라서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자체를 악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제도를 악용하는 정치인이다.
권력의 탄압 방패가 제 식구 방탄막으로 변했다
오늘날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뇌물, 횡령, 배임, 정치자금법 위반 등 개인적인 범죄 혐의가 제기됐는데도 정당과 계파가 앞장서 의원을 보호하는 모습이다.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의원들은 국민 앞에서 책임 있게 판단하기보다 당론과 계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심지어 비회기 기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임시국회를 연이어 소집하는 방식으로 불체포특권을 악용하는 이른바 ‘방탄국회’ 논란까지 반복됐다.
헌법이 국회의원에게 특권을 준 이유는 개인 범죄 혐의를 받는 정치인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행정부의 부당한 탄압으로부터 국회의 독립성과 의정활동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면책특권 뒤에 숨어 ‘아니면 말고’ 정치
면책특권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국회 밖에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의정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허위 폭로와 인신공격의 면허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검증되지 않은 유튜브 주장이나 출처가 불분명한 제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대정부질문에서 폭로한다.
언론과 SNS가 받아쓴다.
그런데 나중에 허위로 밝혀지면?
“그런 의혹을 제기했을 뿐이다.” 그리고 끝이다.
이것이 반복되면 정치인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상처만 남길 수 있다.
권력 감시를 위해 만들어진 면책특권이 오히려 정치공세와 가짜 뉴스의 방패로 악용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특권을 무조건 폐지할 것인가?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생긴다.
국민 눈높이에서 보면 “특권을 없애라”는 주장은 매우 시원하게 들린다.
하지만 불체포특권을 전면 폐지하는 것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만약 수사권을 가진 행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야당 국회의원을 손쉽게 체포하고 구속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중요한 법안이나 예산을 처리하기 직전에 야당 의원들을 표적 수사한다면?
의원들을 압박해 국회의 의결 구조 자체를 흔든다면?
민주주의의 핵심인 입법부의 독립성이 무너질 수 있다.
특히 우리는 권력이 헌법적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누구도 권력기관이 그렇게까지 움직일 것이라고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도 있었다. 윤석열의 계엄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따라서 특권을 없애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특권의 남용을 차단하면서도 입법부를 권력의 탄압으로부터 보호하는 정교한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답은 ‘폐지’가 아니라 ‘정밀 수술’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명확하다.
첫째, 체포동의안 표결을 기명으로 바꿔야 한다.
현재 무기명 투표 구조에서는 의원들이 국민의 눈을 피해 당론이나 계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했다는 비판을 받기 쉽다.
자신이 누구를 왜 보호했는지 국민에게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대표라면 국민 앞에서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
둘째, 개인의 중대한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불체포특권을 제한해야 한다.
행정부의 정치적 탄압과 뇌물·횡령·배임·불법 정치자금 등 개인적 범죄 혐의는 구별해야 한다.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법절차가 특별히 지연되거나 차단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면책특권의 남용에 대한 국회 내부의 실질적인 징계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명백한 허위 사실을 폭로하거나 악의적인 인신공격을 한 경우에는 실질적인 징계가 뒤따라야 한다.
국회 윤리심사 과정에 외부 전문가의 참여를 대폭 확대하고, 허위 폭로에 대해서는 출석정지·수당 제한 등 실효성 있는 제재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
특권은 권력이 아니라 책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국회의원에게 특권이 필요한 이유는 특별한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다.
국민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하고 법을 만드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권이 국민을 위한 방패가 아니라 정치인 자신을 위한 방탄막이 되는 순간 그 정당성은 무너진다.
불체포특권은 범죄 혐의자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되고, 면책특권은 허위 폭로의 면허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회의원에게 필요한 것은 특권을 없애자는 감정적 구호만도, 특권을 무조건 지키자는 기득권 논리도 아니다.
권력의 탄압은 막되 범죄의 책임은 피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진짜 개혁이다.
국회의원이 국민 위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제도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방패는 국민을 향해야 한다.
이제 방탄조끼는 벗어야 한다.

– 아크로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