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을 포기한 언론은 권력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침몰한다
권력이 제 길을 벗어나 폭주할 때 가장 먼저 매서운 채찍을 들어야 하는 존재는 언론이다. 특히 보수 정권이 제대로 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진보 진영의 비판보다도, 보수 주류 언론의 냉혹한 자기 성찰과 자정 기능이다.
그러나 과거 오랜 기간 주류 보수 언론이 보여준 모습은 정론직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경고등을 켜기는커녕 권력의 치명적인 실책마다 궤변의 방패를 만들어주는 ‘전위대’를 자처했다.
보수를 살린다는 명분 아래 이어진 끝없는 감싸기는 결국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권의 눈과 귀를 가렸고, 스스로 무너지는 길을 열어준 가장 독한 독약이 되었다.
대통령의 실책보다 ‘방어 논리’를 먼저 만든 언론
윤석열 정부를 상징하는 사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2022년 9월 미국 뉴욕 순방 당시의 비속어 논란이다.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이동 과정에서 윤석열의 발언이 방송사 카메라에 포착됐다.
당시 MBC는 자막을 통해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 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보도했고, 대통령실은 몇 시간 뒤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며 미국 의회가 아니라 한국 국회를 지칭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사건은 대통령실과 MBC의 법적·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졌고, 국정 지지율 하락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후의 보수 언론이었다.
그들은 대통령의 품격과 외교적 언행을 냉정하게 평가하기보다 “맥락을 봐야 한다”, “정치 공세다”, “진보 언론의 왜곡이다”라는 논리로 방어막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국민이 궁금했던 것은 ‘무슨 단어를 말했느냐’보다 왜 대통령이 국제 외교 무대에서 그런 수준의 발언을 했느냐는 점이었다.
그러나 보수 언론은 본질을 외면한 채 프레임 전쟁으로 몰고 갔다.
권력이 가장 들어야 할 경고를 차단해 버린 것이다.
외교 참사도 ‘용단’으로 포장했다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2023년 UAE 방문에서는 “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발언으로 외교적 논란을 자초했고, 실제로 이란 정부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같은 해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는 일본을 향해 “100년 전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릎 꿇으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국내외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역사 문제를 바라보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인식에 대한 논란이 커졌지만, 상당수 보수 언론은 또다시 정권을 감싸는 데 집중했다.
외교적 실책보다 “미래를 위한 결단”,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용기”라는 해석이 앞섰다.
김건희 논란 역시 권력 감시보다 피해자 프레임을 강조하는 보도가 적지 않았다.
권력을 향한 견제는 사라지고 방어 논리만 남았다.

언론이 앞장 서서 권력을 망쳤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은 권력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이 잘못된 길로 갈 때 가장 먼저 멈춰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주류 보수 언론은 감시자가 아니라 변호인이 되었고, 비판자가 아니라 아첨꾼이 되었다.
그 결과 윤석열 정부는 반복되는 실책 속에서도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잃었다.
잘못을 지적 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오만해진다.
오만해진 권력은 결국 민심과 충돌하고, 민심과 싸우는 정권의 결말은 언제나 비슷했다.
보수 언론의 무조건적인 감싸기는 정권을 도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권이 현실을 외면하도록 만든 방조였고, 보수 정치 전체를 민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원인이었다.
보수가 살아남으려면 먼저 언론과 결별해야 한다
보수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고 싶다면 가장 먼저 청산해야 할 대상은 잘못을 비판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언론 생태계다.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언론은 결국 권력과 함께 몰락한다.
정권의 실수를 감추는 언론은 결코 보수를 살리지 못한다.
오히려 가장 빠르게 보수를 무너뜨리는 공범이 될 뿐이다.
보수를 진정으로 살리는 언론은 권력의 입이 아니라 국민의 눈과 귀가 되는 언론이다.
그 원칙을 잃는 순간, 언론도 권력도 함께 역사 속 심판을 피할 수 없다.
– 아크로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