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자멸의 길을 걸었다. 본인의 역량을 훨씬 넘어서는 자리에 앉게 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그런 무능력자를 도와 윤석열 개인의 파멸은 물론 나라를 망친 사람들이 있다. 정치 평론가는 물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마다 선택이 다를 수 있다. 모두까기가 뽑은 그 다섯 명의 죄악을 하나씩 파헤친다. 을사오적이 나라를 팔아 먹었듯 이들도 대한민국을 망쳤다. 그 다섯 번째는 한동훈이다.
반윤을 외친다고 과거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최근 한동훈은 ‘반윤’의 상징처럼 소비되고 있다. 일부 보수 언론은 그를 윤석열과 결별한 새로운 보수의 대안으로 부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 평가가 그의 정치적 행적 전체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한동훈은 윤석열 정권의 외부인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가까운 핵심 측근이었고, 정권 초반 권력의 중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었다.
윤석열 정부를 만들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이제 와서 마치 모든 책임에서 벗어난 새로운 지도자인 것처럼 포장되는 모습은 보수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 준다.
윤석열 정부의 ‘황태자’였던 한동훈
한동훈과 윤석열의 관계는 단순한 선후배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검찰 시절부터 주요 특수수사를 함께 수행하며 정치적·업무적 신뢰를 쌓아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고,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을 통해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업무까지 담당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검사 출신 인사들이 대거 요직에 기용되는 과정 역시 한동훈의 영향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후 여러 인사 참사가 벌어졌지만, 이에 대해 한동훈이 정치적 책임을 진 적이 없다.
그는 정권 초반 윤석열 정부를 떠받친 핵심 실세였다. 그래서 ‘윤석열 정권의 황태자’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던 이유다.

정치보다 권력을 앞세웠다는 비판
법무부 장관 시절 한동훈은 국회에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 요청과 관련해 장시간 설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에서는 법 절차에 따른 설명이라고 주장했지만, 야권과 비판적 시각에서는 사법 절차를 정치적 대립의 장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뿐 아니다. 일부 언론과 유튜브 매체, 정치인을 상대로 한 소송과 고소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데 앞장 섰다. 자기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검사 버릇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정치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전혀 없고 소송과 고소라는 법률행위만 남았던 것이다.
지지층은 이를 법적 권리 행사라고 평가했겠지만, 이는 자기 권력을 지키기 위해 법률 권력을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악용한 사례에 불과하다.
윤석열과의 충돌, 그리고 보수의 자해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한동훈이 국민의힘 대표가 된 이후였다.
한동훈은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윤석열과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국정 운영의 새로운 해법을 보여주기보다는 윤석열과의 갈등이 정치의 중심이 됐다.
당은 분열됐고,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공개 충돌을 반복했다.
결국 국민이 바라본 것은 미래 비전이 아니라 권력 내부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특히 당원게시판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한동훈은 자신이 강조해 왔던 원칙과 책임의 기준을 스스로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했는지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
결국 훗날 이 사건으로 당에서 제명 당했지만 아직도 한동훈은 이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진정성 있는 사과는 하지 않는다.
강한 도덕성을 주장했던 정치인이 정작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서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은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으로 남았다.

윤석열의 피해자인가, 공동 책임자인가
오늘날 한동훈은 윤석열과 대립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보수층으로부터 새로운 보수의 희망처럼 평가 받기도 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핵심 권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라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권이 시작되자 권력의 중심에 있었고, 실패가 시작되자 거리를 두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석열 정부의 권력 구조를 만드는 데 앞장 섰던 인물이, 정권의 실패 이후 자신만 새로운 정치인처럼 등장하는 모습은 많은 유권자에게 책임 정치라는 관점에서 커다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실패를 이야기하면서 한동훈을 완전히 분리해 평가하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결과다.
요즘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두고 연일 한동훈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홍준표의 지적처럼 검찰의 수사권 박탈은 윤석열 한동훈이라는 용병검사 두 명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한동훈은 자신의 과오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뻔뻔함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있다.
보수가 같은 선택을 반복한다면
보수는 지금 재건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하지만 과거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인물을 단지 윤석열과 갈등했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대안으로 삼는다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게 뻔하다.
정치는 책임으로 평가 받는다.
권력의 중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이라면, 성공의 공도 실패의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윤석열 정권은 두 검사 출신 정치인의 권력 동행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동행은 결국 정권의 내분과 갈등 속에서 막을 내렸다.
‘윤석열을 망친 5인’의 마지막 이름이 한동훈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석열 정권의 피해자가 아니라, 정권의 탄생과 운영, 그리고 균열의 과정 모두에 깊이 관여했던 핵심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보수가 과거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한 채 같은 얼굴을 다시 미래의 대안으로 내세운다면, 그 끝에는 재건이 아니라 또 다른 실패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 아크로폴















